셀던 파머 스펜서(1862년 9월 16일 ~ 1925년 5월 16일)는 대한민국 독립 운동 공적을 인정받은 미국의 정치가이자 외교관입니다.
셀던 파머 스펜서
셀던 파머 스펜서는 1862년 9월 16일 펜실베이니아 주 이리에서 태어나 1925년 5월 16일에 세상을 떠난 미국의 변호사이자 정치인입니다.
예일 대학교에서 철학을 공부하고 워싱턴 사립 대학교에서 법학을 전공한 그는 1898년 정치에 입문하여 미주리주를 대표하는 공화당 상원의원으로 활약했습니다.
한국과의 특별한 인연
스펜서 의원과 한국의 인연은 꽤 깊습니다. 1905년부터 1906년까지 대한제국 한성부에 머물기도 했으며,
이때 '이승리(李勝里)'라는 한국 이름도 가졌다고 해요.
그는 특히 1919년 3.1 독립만세운동 이후, 일제의 잔혹한 탄압에 깊이 분노하며 한국 독립운동의 강력한 지지자가 되었습니다.
-미국에서의 3.1운동: 1919년 4월 14일부터 16일까지 진행됐던 제1차 한인회의는 국내에서 일어난 3·1운동 소식이 미주지역까지 퍼지자, 서재필·이승만·정한경 등 한인 지도자들이 우리 민족의 독립의지를 전 세계에 널리 알리고자 개최한 결의 행사입니다. 한인 동포 150여 명 외에 플로이드 윌리엄스 톰킨스 목사, 셀던 파머 스펜서 상원의원 등 미국인도 참여했습니다.
'미국에서의 3·1운동'으로 불리는 당시 회의에서는 대한민국 임시정부, 미국 정부와 국민, 파리 강화회의, 일본 지식인 등을 대상으로 한국 독립 의지를 알리는 5개 결의안을 채택하고 독립선언문을 낭독했습니다.
-미국 의회에 독립 문제 제안: 3.1 운동 직후인 1919년 6월과 8월, 그는 미주리주 상원의원으로서 무려 두 차례나 미국 의회에 대한제국의 독립 문제를 공식적으로 제안했습니다. 먼 타국의 독립을 위해 자국 의회에서 목소리를 낸다는 것은 정말 대단한 용기가 필요한 일이었을 거예요.
-공개적인 지지 연설: 1920년 5월, 필라델피아에서 열린 대한제국 조선 친우회 집회에 연사로 참여하여 일제의 식민 통치를 강력히 비판하고 대한제국의 독립을 지지하는 열정적인 연설을 펼쳤습니다.
-'대한의 호소' 배포: 1921년 12월, 미국 워싱턴 회의에서는 대한민국 임시정부 대표단이 보낸 '대한의 호소(Korea's Appeal to the Conference on Limitation of Armament)'라는 책자를 직접 만들어 미국 상원 의회에 배포했습니다. 그리고 1922년 2월에는 이 호소문이 미국 의회 의사록에 정식으로 삽입되도록 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이러한 그의 노력은 국제사회에 한국의 독립 의지를 알리고, 일제의 부당함을 고발하는 데 큰 힘이 되었습니다.
대한민국이 기억하는 영웅
셀던 파머 스펜서는 1925년 5월 16일 워싱턴 D.C.의 월터 리드 육군 병원에서 탈장 수술 합병증으로 사망했으며, 세인트루이스의 벨폰테인 묘지에 안장되었습니다.
셀던 파머 스펜서 의원은 한국 독립을 위해 헌신한 공로를 인정받아, 사후인 2015년 3월 1일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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