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이야기

100명의 광복군을 구한 중국인 독립유공자, 쑤징허

픔_Peum 2025. 7.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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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우리에게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한국의 독립을 위해 헌신했던 위대한 중국인 영웅, 쑤징허(蘇景和) 선생에 대해 이야기해보고자 합니다. 쑤징허 선생은 1918년 중국 허베이성 친황다오시에서 태어나 202029일 상하이에서 별세하신 분으로, 한국광복군의 지하 공작원으로 활동하며 대한민국의 독립에 크게 기여하셨습니다. 그는 해외 독립유공자 중 가장 마지막까지 생존하셨던 분이기도 합니다.

 

1. 난징에서 피어난 독립의 불꽃: 쑤징허 선생의 활약

 

쑤징허 선생은 독립운동가로 알려지기 전인 19435월 난징 국립 중앙대학에서

부패와 친일을 이유로 총장의 퇴출을 요구하는 동맹휴학을 주도했어요.

이 학생 운동 경험이 후에 그가 항일 독립운동에 뛰어드는 계기가 되었다고 해요.

 

그는 한국 독립운동에 적극적으로 협조하기로 뜻을 세웠고, 한인 청년 조일문과 한국인 유학생 송지영(宋志英)·이일범(李一凡)·박철원(朴哲遠)·이정선(李正善)·신영묵(申榮默)·박익득(朴益得)·정영호등 한족동맹(韓族同盟) 멤버들과 함께 의기투합하여 지하 항일운동을 수행했습니다.

 

 

쑤징허 선생과 한국인 조일문의 우정은 매우 특별했어요. 두 사람은 난징국립중앙대학에서 같은 기숙사 룸메이트였습니다. 두 사람은 "항일로 나라를 되찾자"며 의기투합했고, 이후 평생 동지로 지냈습니다. 한중수교 이후인 1992, 쑤징허 선생은 한국에 살던 조일문 등 옛 동지들과 감격적인 재회를 했어요. 이 만남은 거의 50년 만의 재회였다고 합니다.

 

선생은 난징 내 일본군 동향을 수집하고, 광복군 모병 활동을 펼쳤으며, 광복군에 입대하려는 청년들을 안전하게 호송하는 등 다양한 비밀 임무를 수행하셨습니다.

특히, 난징에서 시안까지 1천여 킬로미터에 달하는 험난한 길을 세 차례나 오가며 광복군 입대를 원하는 한인 청년들을 호송하셨다고 해요. 그의 도움으로 약 100여 명의 한인 청년들이 광복군에 합류할 수 있었다고 하니, 그 용기와 헌신이 정말 대단하죠?

 

2. 고난 속에서도 빛난 헌신, 그리고 뒤늦은 인정

 

쑤징허 선생의 헌신은 1946년 한국광복군 총사령관 이청천 장군으로부터 '포상장'을 받으며 인정받았습니다.

 

그러나 중국 건국 후 공무원 생활을 시작한 그는 문화 대혁명 시기에 대한민국을 도왔다는 이유로 정치적 박해를 받고 고난의 시간을 보내야 했습니다.

 

 

하지만 그의 헌신은 잊히지 않았습니다. 1992년 한중수교 이후, 그는 조일문 등 옛 동지들과 재회하게 되었고, 안춘생, 조일문 등 한국 독립운동가들의 적극적인 추천으로 1996년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건국훈장 애족장을 수여받았습니다.

 

이는 그의 희생이 마침내 대한민국으로부터 공식적으로 인정받은 순간이었습니다.

 

3. 영원히 기억될 이름, 쑤징허

 

쑤징허 선생은 202029, 101세의 나이로 별세하기 전까지 해외 독립유공자 중 가장 마지막까지 생존했던 분이에요.

그는 한국 독립운동사에서 외국인으로서 가장 오랜 시간 그 역사를 증언해 온 산 증인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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